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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다한 세상 소식

사유리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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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의 '슈돌' 출연 반대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그녀를 향한 돌팔매질은 언제까지 계속 될까.
앞서 미혼인 사유리는 일본의 정자은행을 통해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 후 지난해 11월 4일 아들 젠을 출산했다. 사유리의 출산으로 '자발적 비혼모'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3월 23일 KBS2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 측은 사유리가 새로운 슈퍼맨으로 합류한다는 소식을 밝혔다. 제작진은 "우리 프로그램에서 '슈퍼맨'은 아이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하는 히어로라는 뜻을 담고 있다"라며 "사유리 역시 한 아이를 키우는 슈퍼맨의 길로 들어섰다. 사유리의 육아를 보고 싶다는 누리꾼들의 요청에 따라 슈퍼맨으로 섭외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성별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위대한 여정에 방점을 찍은 '슈돌'의 소신 있는 결정은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출연 소식이 알려지고 이틀 뒤인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비혼모 출산 부추기는 공중파 방영을 즉각 중단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게재됐다.
청원인은 "지금 한국은 저출산 문제도 심각하지만 결혼 자체를 기피하는 현실이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청년실업률도 엄청나다. 이럴 때일수록 공영 방송이라도 올바른 가족관을 제시하고 결혼을 장려하며 정상적인 출산을 장려하는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슈돌'을 가리키며 "오히려 비혼모를 등장시켜서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에게 비혼 출산이라는 비정상적인 방식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일본 여자를 등장시키려 하고 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아직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는 미혼인 여인이 갑자기 일본 가서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구해서 임신 후 출산 그리고 갑작스러운 출연까지 시청자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공영 방송의 가정상을 제시해 주시길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청원인은 줄곧 '올바른 가족관', '정상적인 출산'을 언급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사유리의 출산은 '비정상적인 방식'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정상적인 결혼과 출산이 중요하다면 이혼, 입양 가정, 딩크족(부부생활을 영위하며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부부)도 모두 비정상인 셈이다.
또한 청원 글에도 나와 있듯이 젊은 세대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건 '비정상적인 가족관'에 물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머니 사정이나 개인의 선택에서 비롯되는 게 대다수다.
치솟는 집값은 청년들의 결혼 의욕을 꺾는 주요한 원인이다.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위해서는 내 집 마련이 필수적인데 21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성실근로자 울리는 5대 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20년 전국 아파트 중위 매매 가격 상승률은 연평균 7.4%다. 서울 아파트의 주위 매매 가격 상승률은 연평균 12.9%에 이른다. 서울 중위가격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지난해 근로자 평균 임금(352만7000원)을 21.8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모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혼과 출산을 필수라고 여기지 않는 새로운 풍토가 조성된지도 오래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지난해 8, 9월 초중고교생 70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 중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한 학생은 16.7%였다. '결혼 필수'라는 공식이 이미 깨졌다는 의미다. 이런 와중에 청년층이 사유리를 보고 자발적 비혼모를 꿈꾸게 된다고 우려하는 것은 거의 코미디에 가깝다.
이 청원 글이 문제가 되는 건 사유리의 '슈돌' 출연이 무산될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청원인 말대로 공영 방송인 '슈돌'마저 사유리를 섭외한 것은 정상 가족 이념이 보수적인 게 아니라 낡고 고루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29일 오전 9시 30분 기준 2,585명이 이 청원에 동의했다. 엄마, 아빠, 아이로 구성된 가족 외에는 모두를 '비정상' 취급하는 데에 무려 2,500명이 공감했다는 게 충격적일 뿐이다.
다문화 가정, 한부모 가정, 이혼 가정, 딩크족, 심지어 결혼을 하지 않는 1인 가구도 모두 증가 추세다. 엄마, 아빠, 아이로 이루어진 가족만 정상적인 가족이라면 이 많은 가정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청원인 말처럼 젊은 세대들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건 심각한 사회 문제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경제적, 사회적 근본 원인이 자리하고 있다. 그 '비정상적' 원인이 해소되지 않았는데 결혼, 출산만 예전 방식대로 하지 않는다고 '비정상' 꼬리표를 붙이는 건 모순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든 아이를 낳고 기르고 있는 '엄마' 사유리에게 정상, 비정상을 운운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 분명하다.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인식의 제자리걸음이 사유리에게 작은 상처도 주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한편으로는 '슈돌'을 통해 사유리가 정상 가족 이념을 제대로 부수고 청원 글에 동의한 2,500명의 인식을 전환할 수 있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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