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면 홍등(紅燈)을 환히 밝힌 채 욕망을 자극했던 서울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영등포 수도골목. 재개발 열풍이 불어 닥친 이곳도 몇 년 뒤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수십 년 간 유지된 ‘성매매 온상’ 꼬리표는 사실 국가가 방조한 것이었다. 국가는 집결지 땅 일부를 제공했고, 불법에 눈 감은 사이 업주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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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인근 성매매 집결지 수도골목 풍경. 골목 오른편으로 '휘파리방'이라 불리는 성매매 업소가 몰려 있다. 서재훈 기자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4가 431-6번지. 우뚝 선 대형백화점과 복합쇼핑몰 건너편 좁은 골목은 대낮에도 을씨년스러웠다. 조립식 패널로 지은 무허가 건축물에 전기를 연결하기 위해 전봇대에서 억지로 끌어온 전선이 어지럽게 엉켜 하늘도 잘 보이지 않았다. 골목 어귀에선 짙은 화장을 한 여성들이 지나가는 남성의 팔을 끌었다. 원룸이나 주택에 살며 성매매를 하는, 일명 ‘휘파리’ 여성들이다. 한 여성이 남성과 잠시 흥정하더니 골목 안으로 함께 사라졌다. 서울의 마지막 ‘성(性)매매 집결지’, 영등포 ‘수도골목’ 풍경이다.
나라 땅서 버젓이 성매매 영업
수도골목이란 명칭은 지금은 없는 영등포역 앞 수도여관에서 유래했다. 수도골목을 비롯한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는 3년 뒤면 지도에서 자취를 감춘다. 2018년부터 영등포역 일대 환경 개선에 착수한 영등포구는 지난해 6월 이 일대를 영등포 도심역세권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으로 정했다. 이르면 2025년 최고 44층 높이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일부 건물이 이주를 위해 문을 닫으면서 골목은 더 썰렁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엔 ‘사람’이 있다. 성매매 영업을 하는 146명의 여성과 성을 사러 찾아오는 남성들이다.
아직 휘파리를 떠나지 못한 성매매 여성 A씨를 만났다. 그는 불법 가건물에서 먹고 자며 일한다. 당연히 등기부등본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대화 도중 A씨가 뜻밖의 말을 했다. “이 근방에 나라 땅이 천지야.” 건물이 세워진 토지 일부가 국가 소유라는 것이다.
미심쩍었지만 토지대장을 확인한 결과 사실이었다. 조각조각 쪼개진 필지 목록을 하나하나 검색하니 일부 필지의 소유자가 ‘국(國)’으로 표기돼 있었다. 국유지라는 얘기다. A씨는 “우리 건물주 말고도 국가 땅에 불법 건물 지어놓고 (성매매 영업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국가가 얼마나 많은 성매매 집결지의 ‘지주(地主)’인지 확인해 봐야 했다. 조사는 지난했다. 이곳에 지번이 부여된 건 80여 년 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 때다. 광복 후 지금껏 변변한 토지 측량 한 번 진행되지 않은 탓에 필지 주인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현장을 찾아 지번을 무시한 채 무분별하게 세워진 건물ㆍ구조물을 등기부등본 및 토지대장과 일일이 대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