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앱 등 대부분 ‘글’로 가하는 폭력
동기의 60% 이상은 ‘보복’, ‘장난’
피해자는 우울·불안·복수심 등 정서적 타격
최형식(19·가명)씨는 올해 대학에 입학하면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닫았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보는 계정들로부터 ‘악플 테러’를 받은 나쁜 기억 때문이다. 이들은 최씨 게시물에 대한 댓글이나 다이렉트 메시지(DM) 등으로 외모를 헐뜯거나 가족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렸다. 최씨는 가해자가 몇몇 급우들이라고 추측할 뿐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찾지는 못했다. ‘얼굴 없는 괴롭힘’이 대학생활까지 방해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그는 결국 인스타 등 모든 에스엔에스(SNS)를 비활성화했다.직장인 김다영(30·가명)씨는 즐겨 하던 슈팅게임을 최근 접었다. 같은 편인 게이머가 김씨가 여성인 것을 알고 성희롱과 성 비하 발언을 게임 내내 퍼부은 뒤부터다. 김씨는 “컴퓨터 스피커 너머로 들려온 입에 담지 못할 표현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몸이 떨린다”고 말했다.이들의 경험은 운이 없어 생긴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한국 청소년의 약 30%, 성인의 16%가 이런 식의 사이버 폭력을 당하거나 가해본 것으로 조사됐다. 메신저 앱 등으로 여럿이 특정인을 괴롭히는 ‘사이버 불링’은 물론이고, 게임·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매개로 한 폭력도 심각했다. 사이버 폭력이 상대에 남기는 피해에 대한 교육과 함께 처벌 강화가 시급하다는 제언이 나온다.방송통신위원회는 7일 ‘2021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9∼11월 전국 청소년과 성인 총 1만6500명을 대상으로 사이버폭력 피해·가해 경험 등을 물은 결과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 청소년의 29.2%가 사이버 폭력을 경험했다. 피해를 당해봤다는 응답이 15.1%, 가해를 해봤다는 응답이 5.8%, 피해·가해를 모두 경험했다는 응답이 8.3%에 달했다. 성인 중에는 15.7%가 사이버 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사이버 폭력이 이뤄지는 매체로는 절반 이상이 메시지 앱을 꼽았다. 청소년 중에선 ‘문자 및 인스턴트메시지로 피해를 당했다’는 비율이 55.6%에 달했다. 에스엔에스(34.5%)·온라인게임(18.4%)·인터넷커뮤니티(6.4%) 비중도 높았다. 성인들은 문자 및 인스턴트 메시지(64.2%), 에스엔에스(30.5%), 온라인게임(11.0%) 순으로 꼽았다.주된 가해 동기는 ‘보복’과 ‘장난’으로 나타났다. 가해 청소년의 36.8%가 ‘상대방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사이버 폭력을 저질렀다고 답했다. ‘장난’이라는 응답과 단순히 ‘상대가 싫어서’가 각각 26.2%와 24.5%로 뒤를 이었다. 어른의 경우에는 ‘상대가 싫어서’라는 대답이 32.7%였고, ‘내 의견과 다른 상대여서’라는 답이 26.9%로 조사됐다.이처럼 가해는 비교적 ‘사소한’ 이유로 이뤄지는 반면 피해자들의 상처는 컸다. 피해 청소년의 31.7%는 우울·불안·스트레스를 겪었다고 답했다. 34.1%는 가해자에 대한 복수심을 느끼는 등 부정적 정서에 시달렸다. 성인도 우울·불안·스트레스(38.8%), 복수심(37.2%)은 물론이고 인간관계 어려움(34.5%)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김봉섭 지능정보사회진흥원 인공지능윤리팀 연구위원은 <한겨레>에 “온라인에서 ‘재미로’ 가한 폭력이 상대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청소년에게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며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등을 법적으로 더욱 명확히 규정해 ‘사이버 폭력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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