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예람 하사 사건 마무리도 전에
5월 공군 내 여군 하사 또 극단 선택 사실 알려져
군인권센터 "강제추행 인지하고도 변사 종결"[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선임 간부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하고 세상을 떠난 공군 고(故) 이예람(여) 중사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공군에서 또 다시 여군 부사관이 극단 선택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을 폭로한 시민단체는 “당시 정황을 살펴보면 피해자 사망 전 상관의 강제추행이 있었음에도 군 당국은 이를 유족에게 숨겼다가 나중에 별건 기소했다”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는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군 성추행 피해 여군 사망 사건이 또 있었지만, 군 당국이 단순 변사사건으로 종결했다가 나중에 강제추행 혐의를 별건으로 기소했다”고 폭로했다.
단체에 따르면 지난 5월 11일 공군 8전투비행단(8비)에서 A하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가운데 8비 군사경찰은 새로 맡은 업무가 힘들다고 호소했다는 A하사 주변인들의 진술을 확보해 지난 6월 10일 변사사건을 종결했다.
이후 유가족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지난 9월 군 수사기록 자료를 처음 받게 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A하사의 직속상관이었던 B준위는 A하사가 사망하기 전까지 홀로 A하사의 최소 7차례에 걸쳐 숙소에 방문하고,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메시지와 전화를 건 것으로 드러났다.
또, B준위는 지난 3월과 4월 두 번에 걸쳐 부대 상황실에서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제 추행한 것으로도 밝혀졌다. 이뿐만 아니라 B준위는 A하사 사망 이틀 전인 지난 5월 9일에도 A하사 불러 자신의 차량에 태운 후 20분가량 같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6월 2일 사건을 맡은 8비 군사경찰은 거짓말 탐지기 수사를 통해 ‘현장에서 노트북이나 유서 등 기록물을 챙겨 나온 일이 있습니까’, ‘피해자와 성적인 스킨십을 하거나 성관계를 한 적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했고 B 준위는 모두 ‘아니오’라고 답했지만, 거짓으로 판명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센터는 A하사가 사망한 당일 B준위가 A하사 집에 찾아가 증거 인멸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단체에 따르면 B준위는 A하사가 출근하지 않자 A하사의 숙소에 찾아가 문을 열기 위해 경비실에서 여벌의 키를 찾거나, 인근 열쇠 집에 찾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B준위는 주임원사가 도착하자 방범창을 뜯고 숙소에 들어가 A하사의 노트를 만지는 등 집안을 수색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보통 경찰이나 119에 신고하고, 문을 강제 개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직접 문을 열기 위해 경비실과 열쇠 집을 찾아가거나, 방범창을 뜯고 안으로 진입하는 행위는 비상식적”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B준위는 사망 전 당시 피해자와 통화한 기록을 골라 삭제하고, 차량 블랙박스 역시 삭제한 것으로 파악됐다.
임 소장은 “사건을 맡은 군사 경찰이 전에 강제추행 관련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군 경찰이 이를 반영하지 않고 변사 사건을 종결했고, 이후 강제추행 건을 나중에서야 슬그머니 별건 기소했다”며 군 당국의 사건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8비 군사경찰은 변사사건 수사를 종결할 당시 ‘보직이 변경되면서 업무과다 등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만 담고 강제추행 관련된 사실을 반영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해당 주임원사와 B준위는 공동재물손괴, 공동주거침입 등 혐의로 7월
26일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10월 뒤늦게 별도 기소된 강제추행 건은 지난 2일 공군공중전투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공동주거침입 등 사건과 병합했다. 임 소장은 “이마저도 유족들은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강조했다.
센터는 “군사 경찰의 수사, 군 검찰의 기소, 군사법원의 재판 기능은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입증됐다”며 “사망의 인과관계를 살펴 가해자를 처벌하고 사건을 은폐 축소해온 수사 관련자와 지휘계통에 대한 처벌 또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공군의 사건 은폐한 정황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3월 초 고(故) 이예람 중사는 회식에 참석했다 돌아오던 중 선임 장모(남)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혼인신고를 마친 날인 5월 22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중사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군에 신고하고, 자발적으로 부대까지 전속 요청도 했지만, 군의 조직적인 회유와 압박 속에서 제대로 보호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던바 있다.